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
조지 소로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변호사였던 아버지 슬하에 태어나, 어린 시절 유복하게 자랐지만 2차 세계 대전으로 나치가 유럽을 장악하자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았다.
이 후 런던으로 이주해 경제학과 철학을 전공 했으며, 철도역의 짐꾼, 여행 세일즈맨, 은행의 수습 사원으로 어려운 생활을 꾸려 나가다가 펀드매니저계에 뛰어들어 업계 전설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투자자, 자선가, 사업가, 저술가이다. 또한 글로벌 투자 기금인 퀀텀 펀드(Quantum Fund)의 창립자로 유명하며, 소로스의 영향력은 금융계와 정치계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미친다.
생애 주요한 사건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1930년 8월 12일에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대계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소로스는 천재적인 수학적 능력으로 영국의 런던 스쿨 오브 엔츠(Eton College)와 런던 경제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 후 미국으로 이민, 퀸즈 대학교(Queens College)와 시티 대학교(City College of New York)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헝가리와 영국의 다양한 금융 기관에서 일한 후, 1973년 뉴욕으로 이동하여 글로벌 투자 기금인 퀀텀 펀드(Quantum Fund)를 창립하여 글로벌 환율과 주식 시장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 펀드는 소로스의 투자 전략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92년 9월 16일에 영국 파운드 스털링 환율을 대상으로 진행한 거대한 숏 포지션(공매도)으로 유명한 '블랙 웬즈데이'를 일으켰다. 영국 통화를 공격하여 영국의 정치와 금융 시스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조지 소로스는 대규모 자선 활동 단체인 오픈 소시어티 파운데이션(Open Society Foundations)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 인권, 사회 정의 등을 지원하고 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로스는 '개방 사회(Open Society)'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개방을 통해 사회적 발전과 다양성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퀀텀 펀드를 운용하면서 여러 번의 큰 이익을 얻었지만, 2000년에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펀드가 손실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소로스는 투자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소로스는 손에 꼽는 세계적인 갑부이며, 악마같은 헤지펀드계의 대부로 알려져 있지만, 금융계에서의 성공과 독특한 투자 전략, 성공 스토리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그의 정치적 입장인 개방 사회와 민주주의 지지는 일부에서 찬성하지만, 반대하는 의견도 많이 존재한다.
조지 소로스의 투자 명언
금융 시장은 일반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장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모순된다.
시장은 끊임없이 불확실성과 유동성의 상태에 있고, 돈은 뻔한 것을 할인하고 예상치 못한 것에 베팅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옳고 그른지가 아니라, 당신이 옳을 때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틀렸을 때 얼마를 잃느냐이다.
투자가 재미있다면, 아마 돈을 벌지 못할 것이다. 좋은 투자는 지루하다.
내가 부자인 이유는 내가 틀렸을 때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 실수를 인식함으로써 살아남았다.